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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비석에 새겨진 옛 주민 이름과 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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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로속달팽이
댓글 0건 조회 364회 작성일 25-08-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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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의 포구를 따라 걷다 보면 방파제 끝이나 선착장 뒤편에 풍화로 거친 표면을 드러낸 비석들이 조용히 서 있습니다.


이 비석들은 단순한 추모물이 아니라 마을의 생활사와 신앙, 사고의 흔적을 동시에 담아낸 돌문서입니다.


바람과 소금, 해무가 매일같이 표면을 훑고 지나가지만 이름과 연도와 짧은 문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마을 기억의 뼈대를 지탱합니다.


우리는 이 비석들에 새겨진 옛 주민 이름을 읽고 그 주변의 사연과 맥락을 복원하는 기록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첫 단계는 위치 지도화였습니다.


어촌계 창고, 제방, 묘지, 포구 진입로 등 비석이 모여 있는 지점을 좌표로 표시하고 접근 경로, 조도, 파고 영향을 현장 메모에 남겼습니다.


둘째 단계는 판독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해질녘 사선광을 이용해 음영 차를 키우거나 반사광을 차단하는 차광판을 세워 마모된 획의 윤곽을 살려 보았습니다.


탁본은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을 피했고 수성 잉크로 임시 채색해 획의 방향과 깊이를 먼저 파악했습니다.


셋째 단계는 호칭 표준화였습니다.


비석 표제의 한자식 존칭과 방언식 별칭을 병기하고 같은 사람의 다양한 표기를 하나의 식별자로 묶었습니다.


예를 들어 ‘金海洙’, ‘김해수’, ‘해수 영감’은 동일 인물로 연결했습니다.


넷째 단계는 가족·동료 증언 수집이었습니다.


어선 동승자, 일가 친척, 과거 선주와의 거래 관계를 아는 상인들의 기억을 교차 확인해 최소한의 사실 틀을 세웠습니다.


이름 하나, 김해수라는 세 글자는 마을에 ‘해수 바람’이 불던 날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작은 목선의 기관장으로 일했고 봄밤 해무 속에서 기관 고장으로 조류에 휩쓸린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비석에는 ‘등대 불빛이 세 번 꺼지고 세 번 켜지던 밤’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어 당시의 초조와 절망을 건조한 사실 너머로 전달합니다.


또 다른 이름, 박선녀는 ‘젓갈 장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어시장에서 생계를 꾸리며 세 아이를 키웠고 해마다 학교 기금함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마을 초등학교 경사로 옆 작은 표지석에는 ‘골목의 어머니’라는 별칭이 새겨져 있습니다.


교장선생은 우리에게 저 별칭을 아이들이 먼저 붙여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비석의 언어는 표준어와 방언과 한자가 뒤엉킨 혼성체입니다.


‘위령비’와 ‘도선비’, ‘용왕당 표석’이 한 구역에 붙어 서 있고 ‘공로비’에는 ‘꾀미’, ‘거룻배’, ‘개펄’ 같은 토박이 말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용어집을 만들어 뜻풀이를 달고 음성 파일로 실제 발음을 기록해 후대가 목소리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각 기법과 석재의 차이는 보존 전략과 직결됩니다.


현무암은 기공이 많아 염분 침투가 심했고 화강암은 표면 박락이 더디지만 균열이 생기면 급격히 더러워졌습니다.


알칼리성 세척제는 금지했고 부드러운 솔과 미지근한 물만을 사용했으며 물리적 마찰은 최소화했습니다.


풍화가 심한 표면은 실리카 졸 기반의 미세 주입으로 응집력을 높였고 이 과정의 전후 사진과 재료 배합비, 작업자 서명을 기록표에 남겼습니다.


이름을 읽는 일은 곧 관계를 읽는 일입니다.


동행 표기된 선명, 출항 포인트, 장례 때 배를 빌려준 이웃의 이름이 얽히며 보이지 않던 그물망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절충을 제안했습니다.


제물과 발길이 잦은 비석은 현장에 남기되 섬세한 오브제는 기념관으로 옮기고 야외에는 복제품과 QR 표식을 세워 왕래와 기억을 끊지 않도록 했습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각 비석의 고해상도 이미지와 3D 모델, 위치, 재질, 치수, 비문 전사, 용어 해설, 관련 구술, 사건 연표를 연결했습니다.


청년 기록단은 어르신과 짝을 이뤄 세대 페어를 구성했고 현장에서 서로가 서로의 교과서가 됐습니다.


인터뷰는 질문을 덜고 기다림을 더했습니다.


마을 제례는 비석의 말을 오늘의 언어로 옮기는 의식이었으며, 이 장면은 녹취 후 허락을 받아 자막과 함께 아카이브에 올렸습니다.


기록은 법과 윤리를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민감한 사건, 특히 실종과 사고의 세부는 유족 동의 없이는 공개 범위를 제한했고, 초상과 음성도 본인·보호자의 선택권을 존중했습니다.


관광 동선은 잔잔함을 해치지 않는 밀도로 설계됐습니다.


사라진 이름을 복원하는 일은 소리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연표 정리는 사건의 비늘을 가지런히 눕히는 작업이었으며, 이름과 환경 변화가 어떻게 얽혔는지 드러냈습니다.


비석을 세운 이유는 구원, 송덕, 감사, 애도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어린이 교육은 바람과 파도를 관찰하는 놀이에서 시작해 이름 읽기로 이어졌습니다.


연구팀은 흔한 오류를 정리한 체크리스트를 배포했고, 기술은 기록의 정밀도를 높였으나 현장의 예의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름에서 배까지, 배에서 작업 도구까지 확장된 기록은 생활사를 복원하는 경로가 되었습니다.


비석 위 새겨진 배 이름은 곧 가족과 공동체의 경제를 상징했고, 어촌의 여성들은 시장과 공동체 결정의 중심이었음을 구술로 확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비문 언어는 간결해졌지만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의 미학을 함께 보존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은 이름의 관계망을 보여주는 장소가 되었고 프로젝트는 다른 항구로 확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이름을 읽는다는 것은 누구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일인가.


바닷바람이 비석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 듯, 기록 작업은 공동체의 상처를 서서히 다듬습니다.


비석 앞에서 아이가 이름을 읽고 어른이 이야기를 보태며 바다가 뒤에서 박자를 맞춥니다.


그 리듬 속에서 마을은 오늘도 자신을 다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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