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오래된 약수터의 역사와 수질 변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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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약수터는 단순한 물 공급지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관통해 기억과 생활을 묶어 준 상징 같은 장소였다는 사실을 어르신들의 구술과 오래된 사진과 마을 문서가 증언합니다.
약 70년 전 산자락 아래 습윤한 지대에서 물이 끊임없이 솟는 곳을 발견한 주민들이 돌을 쌓아 홈통을 만들고 대나무를 깎아 물길을 잡던 장면은 지금도 몇 장의 흑백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쟁 직후 상수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 이 약수터는 식수 확보의 최전선이었고 물을 길어 나르는 통에는 가족 수대로 이름표가 붙어 있었으며 이른 새벽과 해 질 무렵이면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약수터 주변에는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져 한여름에도 그늘이 짙었고 아이들은 맑은 물이 흐르는 얕은 여울에 발을 담그고 놀며 어른들은 평상에 둘러앉아 절수를 정하고 순번을 정하며 공동체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마을회관이 신축되면서 약수터 정비가 논의되었고 주민 합의로 돌담을 높이고 바닥에 자갈층을 깔아 침전을 유도하며 홈통 앞에 나무 덮개를 두어 낙엽과 흙이 직접 들어가지 않게 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도로가 포장되고 인근에 소규모 장터가 열리면서 이 물이 좋다는 소문이 타지에도 퍼져 등짐으로 통을 지고 와서 물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생겼고 상인들은 약수물로 끓인 국수를 광고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 지자체가 위생 관리를 시작하며 간이 수질 검사가 도입되었고 검사 결과는 분기마다 마을 게시판에 부착되었는데 당시 기록에는 경도 수치가 중간 이상이고 대장균군은 불검출이라는 표시가 반복됩니다.
이 시절 약수터는 마을의 소식통이자 쉼터였으며 장터로 가는 이들이 잠시 쉬어가고 김장철이면 물을 실어 나르는 손수레가 줄지어 서며 겨울 새벽 김 모락모락 나는 풍경 속에서 서로 국물 한 컵을 나눴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마을 인구가 늘고 주변 논밭의 집약 농업이 시작되자 비료와 농약 사용이 늘었고 장마철 이후 질산성 질소가 평년보다 약간 높게 찍히는 일이 관찰되면서 관리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관리위원회는 수질 변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상류 사면의 경작지와 배수로를 조사해 비가 많이 오는 날 탁도가 순간적으로 올라간 뒤 서서히 맑아지는 패턴을 기록하고 완충녹지 조성과 배수로 정비 계획을 세웠습니다.
2000년대 초반 약수터 위쪽에 잔디와 관목을 심어 토사가 바로 물길로 흘러들지 않게 했고 비가 오면 토사와 유기물이 물길에 들어가기 전 퇴적되는 침사지 기능을 하는 작은 웅덩이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같은 시기 약수터 바닥을 다시 파고 자갈과 모래층을 새로 다져서 물이 샘솟는 곳에서 미세한 입자가 걸러지도록 했고 홈통은 스테인리스로 교체하여 세척이 쉽고 위생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했습니다.
2010년대에는 표층 오염 영향을 더 줄이기 위해 수원을 약간 상류로 옮기고 지하수 관정 깊이를 더 깊게 하여 지표수 유입과 교란을 최소화했고 수질 검사는 반기에서 분기로 주기가 늘어났습니다.
검사 결과표를 보면 pH는 대체로 6.8에서 7.2 사이를 유지하고 경도는 80에서 110mg/L 수준이며 여름철 장마 직후 한때 철과 망간이 권고치 근처까지 접근했다가 곧 정상 범위로 복귀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대장균군과 일반세균은 대부분 불검출로 나왔고 예외적으로 장마 폭우 직후 하루 정도 주의 안내문이 게시된 사례가 있었으며 즉시 취수 중단과 홈통 세척과 주변 낙엽 제거로 빠르게 정상화되었습니다.
관리위원회는 계절에 따른 변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같은 온도 구간에서 각각 채수를 하고 같은 시간대 비교를 통해 일사와 강우와 이용량이 수치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했습니다.
여름에는 이용자가 많고 외부에서 가져온 용기 세척이 미흡한 경우가 있어 안내판을 크게 바꾸고 약수터 아래에 전용 세척대를 만들어 약수터 상단에서는 용기 세척을 금지한다는 규칙을 정했습니다.
가을에는 낙엽이 많이 떨어져 홈통 덮개와 주변 배수로를 더 자주 청소했고 겨울에는 결빙으로 홈통이 수축하며 틈이 생기지 않도록 보온재를 둘렀고 이 조치는 이른 봄 해빙기 균열을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봄철에는 꽃가루가 물 표면에 떠서 탁도가 순간적으로 오르는 일이 있어 덮개에 미세망을 추가했고 주변 관목을 일부 전정하여 통풍을 개선하자 표면 부유물의 체류 시간이 줄었습니다.
약수터 사람사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매년 여름이면 급수 순번을 기다리며 수박을 나눠 먹고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으며 노는 풍경이 자연스레 이어졌고 가을이면 감을 깎아 나누던 손도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김장철에는 약수 물로 절인 배추가 더 아삭하고 시원했다는 말이 전해지며 오래된 가세에서는 김치 항아리마다 어느 날 어느 시간 약수터에서 길어온 물이라는 메모를 붙이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015년 인터뷰에서 한 어르신은 이 물맛은 우리 집안이 세대를 이어 기억하는 맛이라며 장마 뒤 며칠은 물맛이 더 둥글어지고 초겨울 첫 얼음 언 날의 물은 유난히 차고 또렷하다고 회상했습니다.
약수터를 지키는 규칙은 단순하지만 힘이 있었고 먼저 온 순서대로 받되 노약자 우선이라는 원칙과 각자 쓰고 난 자리 치우기와 홈통을 손으로 막지 않기 같은 생활 규범은 누구나 지켜야 할 약속이었습니다.
청년회와 부녀회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을 약수터 돌보는 날로 정해 배수로 파기와 낙엽 긁어내기와 쓰레기 줍기를 했고 작업 뒤에는 약수로 끓인 차를 나누며 다음 달 점검 항목을 정했습니다.
지자체가 설치한 안내판에는 약수터 형성 지질과 암반층의 대략적 층서가 그려져 있고 미네랄 성분표와 이용 수칙이 적혀 있으며 안내문의 글씨는 해마다 손때가 묻었지만 내용은 충실히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법적 관리 기준도 함께 중요해져 먹는물에 관한 법에서 제시하는 지하수 수질 기준을 준수해야 했고 기준치 초과 시 즉시 사용 중단과 원인 조사와 정화 조치와 재검 후 재개라는 절차를 내부 규약으로 명문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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