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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자전거 부품으로 만든 예술 조형물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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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로속달팽이
댓글 0건 조회 351회 작성일 25-08-1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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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자전거들은 동네 구석과 정비소 뒤편에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자물쇠에 매달린 녹슨 체인, 휘어진 스포크, 해진 안장, 페달의 고무가 뜯겨 나간 자국까지,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사람의 이동과 계절과 시간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부품들을 다시 모아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로 엮어 보자는 생각을 품었고, 그렇게 ‘회전 기억’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1) 수집: 어디서 어떻게 모았나


첫 주는 오로지 수집 계획을 세우는 데 썼습니다.


자전거 수리점 다섯 곳을 방문해 폐부품 상자 위치와 배출 주기를 파악했고, 재활용센터와 금속 고물상에 협조 요청서를 보냈습니다.


수거 기준은 강철·알루미늄 금속 부품 위주, 플라스틱은 구조적 역할이 가능한 페달 바디·리플렉터 정도만 선택했습니다.


프레임은 크로몰리와 알루미늄을 중심으로, 포크는 스티어러 파이프가 멀쩡한 것만 추렸고, 허브는 베어링 레이스 손상 여부를 간단히 확인했습니다.


도난·분쟁 예방을 위해 매장 폐기확인 스탬프를 사진으로 남겼고, 수집 일지에는 매장명, 수량, 무게, 날짜를 기록했습니다.



2) 세척과 분해: 기름과 녹과 먼지를 지우다


야외 작업대에 타르프를 깔고 고압수로 1차 세척을 한 뒤, 디그리저를 분사해 오일과 흙을 분리했습니다.


체인과 스프로킷은 솔벤트 통에 담가 기름을 빼고, 브레이크 캘리퍼와 레버는 소형 브러시로 틈새를 문질렀습니다.


표면 녹은 와이어 브러시와 사포 320→600 방식을 병행했고, 페인트가 벗겨진 프레임은 스크래퍼로 떠낸 후 프라이머를 염두에 둔 사전 연마를 해 두었습니다.


허브와 크랭크는 완전 분해하여 볼·콘·축을 따로 정리하고, 손상된 부품은 구조용 대신 장식·패턴용으로 분류했습니다.


작업 중 나온 폐오일과 침전물은 지정폐기물로 라벨링해 수거업체에 전달했습니다.



3) 분류 시스템: 조형 언어로 재배치


부품을 형태·질감·직경으로 나눴습니다.


원형 띠(림·체인링), 선(스포크·케이블), 덩어리(허브·크랭크), 면(프레임 트라이앵글), 점(볼 베어링·리벳)처럼 조형적 요소로 분류하니 조합 가능성이 명확해졌습니다.


특히 림 직경 20·24·26·27.5·700C는 각각 다른 리듬을 만들었고, 스포크는 길이·니플 컬러에 따라 그라디언트 패턴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페달과 안장은 ‘관객이 알아볼 수 있는 기억의 단서’라 판단해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 스토리 라인에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4) 컨셉 스케치: 회전과 궤적


컨셉은 ‘회전이 남긴 궤적’입니다.


림을 동심원으로 겹치면 정지 속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지고, 스포크를 선풍형으로 재조합하면 바람의 방향이 보였습니다.


스프로킷은 별자리 같은 점군으로, 체인은 파동처럼 이어 붙여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기로 했습니다.


최종 크기는 폭 3.6m, 높이 2.4m, 깊이 0.6m로 가정했고, 실내·야외 겸용을 위해 모듈화·볼트 체결 설계를 채택했습니다.



5) 구조 설계: 서 있을 수 있어야 아름답다


주 프레임은 40×40×3T 사각 강관을 U자 아치로 굽혀 베이스를 만들고, 20×20 보조빔으로 림 고정 포인트를 촘촘히 배치했습니다.


하중 계산은 대략적인 등분포 하중 150kg 가정, 안전율 3을 적용해 기초 플레이트 앵커 4점을 설계했습니다.


야외 설치를 고려해 갤버나이즈 코팅을 사전 검토했고, 전기적 접합부는 별도의 절연 와셔를 넣어 갈바닉 부식을 최소화했습니다.


전도 사고 예방을 위해 무게 중심을 베이스 중심 안쪽 15cm에 두고, 관람객 접근 구간은 50cm 이격선을 잡았습니다.



6) 접합 기술: 용접, 리벳, 볼트, 그리고 케이블 타이


금속과 금속의 주 접합은 CO₂ 용접을 사용했습니다.


얇은 림에 열 변형이 생기지 않게 간헐 점용접을 하며 냉각 시간을 주었고, 보이는 면은 TIG로 마감해 비드를 최대한 얇게 숨겼습니다.


해체 가능성을 높이려는 부위는 스테인리스 볼트·너트 체결을 선택했고, 진동 완화를 위해 네오프렌 와셔를 삽입했습니다.


스포크 배열은 리벳과 케이블 타이를 혼합했습니다.


임시 고정은 케이블 타이로, 최종 확정 후 리벳팅으로 교체해 오차를 줄이는 방식이 작업 속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7) 표면 처리: 반짝임과 무광의 균형


세척·연마 후 금속 프라이머를 1회, 메탈 실버와 무광 블랙을 영역별로 달리 올렸습니다.


림의 외륜은 브러시드 실버로 빛을 받아 반사하도록, 내륜은 무광으로 눌러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체인은 투명 코팅만 하여 시간의 흔적을 남겼고, 스프로킷 일부는 열착색으로 브론즈 톤을 주어 ‘사용감의 미학’을 강조했습니다.


야외 전시 대비 UV 코팅을 마지막에 1회 더 도포했습니다.



8) 인터랙션: 바람·빛·손길이 움직임을 만든다


관람객이 직접 돌리지 않아도 작품이 ‘살아 움직이길’ 원했습니다.


마이크로 풍차형 허브 모듈을 세 곳에 넣어 미세 바람에도 림 안쪽 장식이 회전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소비전력 5W 이하의 소형 모터를 타이머로 구동하여 하루 세 번 2분씩 고정 리듬을 부여했고, 조명은 낮엔 자연광 반사, 밤엔 3000K 워시 라이트 두 대로 억제된 음영을 만들었습니다.


손대기 존에는 내구성 높은 페달을 낮게 설치해 밟으면 인접 스포크 패턴이 한 바퀴 돌아가는 간단한 메커니즘을 적용했습니다.



9) 안전: 만지기 좋은 작품, 다치지 않는 작품


모든 절단면은 라운딩 처리하고, 체인 핀 돌출부는 캡으로 막았습니다.


손이 닿는 높이에는 날카로운 톱니를 배치하지 않았고, 기계 구동부는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가드로 차단했습니다.


전기 배선은 IP65 등급 방수 박스에 수납, 접지와 누전차단기를 별도로 설치했습니다.


전시 전 소화기 위치, 피난 동선, 야간 조도 점검을 체크리스트로 확인했습니다.



10) 설치: 트럭에서 바닥까지


모듈 세 개로 분해해 1톤 트럭으로 반입했고, 현장에서 베이스를 먼저 앵커링한 후 상부를 크레인 호이스트로 얹었습니다.


수평계와 레이저 라인으로 직각을 재고, 볼트 체결 토크는 규정값에 따라 기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프 배리어와 바닥 스티커를 설치해 관람 동선을 정리했습니다.



11) 전시 첫날: 사람들이 만든 의미


첫 관람객은 자전거 출퇴근을 한다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는 스프로킷을 가리키며 “이건 제 어린 시절 골목의 소리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페달을 번갈아 밟으며 서로의 회전을 응원했고, 어르신은 안장을 쓰다듬으며 오래된 모델명을 읊조렸습니다.


관객의 언어가 붙는 순간, 작품은 더이상 금속의 집합이 아니라 ‘거리의 기억 장치’가 되었습니다.



12) 교육 프로그램: 분해 워크숍과 재조립 수업


전시장 한 켠에 작은 테이블을 두고 ‘부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열었습니다.


참가자는 허브를 분해해 볼과 콘의 원리를 배우고, 고철로 가져온 스포크로 미니 모빌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페달 축을 돌려보며 베어링의 매끄러움을 느꼈고, 부모는 안전과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대화로 나눴습니다.



13) 예산과 조달: 숫자는 정직하다


총 예산은 약 220만 원이 들었습니다.


폐부품은 대부분 무상 기증이었지만, 연마·용접 소모재와 프라이머·코팅, 앵커·볼트류, 운송·장비 렌털 비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역 문화기금 소규모 지원과 크라우드 펀딩을 병행했고, 후원자 명단은 베이스 내부 플레이트에 새겨 영구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14) 환경 성과: 숫자로 남긴 재활용


이번 작품에 투입된 금속 총량은 약 138kg입니다.


프레임·림·체인·허브의 재활용을 통해 신재 생산 대비 추정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효과를 계산했고, 전시 안내판에 간단히 시각화했습니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는 동시에 ‘나의 이동이 남긴 물질의 행방’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5) 유지관리: 반짝임을 오래 유지하는 법


월 1회 육안 점검, 분기별 볼트 토크 재점검, 반년마다 코팅 상태 체크를 계획표로 세웠습니다.


야외 기간에는 비·먼지에 대비해 소프트 커버를 씌우고, 가을 낙엽이 스포크 사이에 끼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브러싱합니다.


관객 인터랙션 파트의 페달 축은 저점도 윤활을 최소량만 적용해 먼지 점착을 방지했습니다.



16) 실패와 수정: 비드와 뒤틀림의 교훈


초기 시제품에서 림이 열변형으로 타원형이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용접 순서를 바꾸고, 수냉 간헐 용접으로 교정했더니 뒤틀림이 크게 줄었습니다.


또 한 번은 체인 파동 패턴이 과밀해 시각 피로를 유발해, 일부 고리를 과감히 비워 ‘숨 쉴 틈’을 만들었습니다.



17) 사진과 기록: 공정도도 작품이다


모든 공정은 타임랩스로 기록했습니다.


세척 전·후, 연마 단계, 프레임 서브어셈블리, 최종 설치까지 같은 구도로 촬영해 나중에 교육·홍보·보고서에 활용했습니다.


부품의 출처를 밝힌 스토리 카드도 만들었습니다.


“이 림은 ○○거리 공유자전거에서, 이 크랭크는 동네 정비소에서, 이 안장은 우체국 앞 거치대에서 왔다”와 같은 문장을 붙이니 관람 몰입도가 높아졌습니다.



18) 소리: 금속이 내는 낮은 숨


스프로킷이 서로 닿을 때 나는 미세한 딸깍, 체인이 흔들릴 때의 잔진동, 허브가 바람에 돌며 내는 얕은 윙, 이 모든 소리를 현장에서 채집해 작은 앰비언트 음원으로 틀었습니다.


과하지 않은 음량으로 배경에 깔자 시각과 청각의 층이 겹쳐졌고, 관람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졌습니다.



19) 협업: 기술자의 손과 예술가의 눈


용접사, 목공, 전기기술자, 안전관리자가 함께 했습니다.


예술가의 상상은 구조계산 앞에서 겸손해졌고, 기술자의 습관은 색과 리듬 앞에서 부드러워졌습니다.


회의 노트에는 “보이지 않는 볼트가 작품을 살린다”, “모든 선은 만나는 곳에서 책임을 진다” 같은 문장이 남았습니다.



20) 커뮤니티와 순환: 다시 길로 나가는 물건들


전시 종료 후 일부 모듈은 지역 도서관 로비로, 작은 림 오브제는 학교 과학실로 옮겨졌습니다.


남은 부품은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표준 상자에 보관했고, 파손된 금속은 고물상으로 되돌려 물질의 순환을 마무리했습니다.



21) 확장 아이디어: 빛을 먹는 자전거


다음 기획은 태양광 미니 패널과 초저전력 모터를 결합해 낮에 축전한 전기로 밤의 회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관객이 페달을 밟아 발전량을 수치로 확인하고, 그 에너지가 조형물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환원되는 구조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22) 법과 책임: 공공장소 전시 체크리스트


야외 설치 시 지자체 도로점용 허가, 안전 점검 확인서, 전기 사용 승인, 보험 가입 등 필수 절차를 밟았습니다.


특히 어린이 접근이 많은 공간에서는 손 끼임·눌림 위험을 사전에 제거했고, 표기판에 만져도 안전한 부위와 주의 구역을 명확히 표시했습니다.



23) 관객 메모: 한 줄 평이 남긴 것


“퇴근길 버려진 제 자전거가 여기서 춤을 추는 것 같아요.”


“부품의 상처가 왜 이렇게 예쁜지, 손을 얹어보니 알겠어요.”


짧은 문장들은 작품의 완성이 관객에게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24) 마무리 소감: 달리던 것들의 두 번째 생


자전거는 이동을 위해 태어난 물건입니다.


멈춘 뒤에도 그 부품들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엮어 새로운 궤적을 만들었고, 금속의 차가움 속에서 사람의 체온을 보았습니다.


이 제작기는 한 점의 조형물이 완성되는 과정이자, 도시의 잔해가 문화가 되는 경로를 기록한 일지입니다.


다음 계절이 오면 우리는 또다시 정비소 뒤편을 찾을 것입니다.


다시 길로 나갈 수는 없어도, 다시 빛을 받을 수 있는 부품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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